연명의료결정법 이후의 과제

2018년 사전연명의료의향서실천모임 세미나 토론문

이일학. 연세의대. 사전의료의향서실천모임

들어가며

이 법이 우리에게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죽음의 결정은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공동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이법은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죽음에 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시작할 기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법의 통과 후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발견하게 된 것인데, 연명의료결정법[1]이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도록 우리를 이끌었다는 것, 최소한 동기를 부여하거나 그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더 발전할 방향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하려 합니다.

토론자는 이 법의 실제 적용될 때 죽음을 적극적으로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 법의 혜택에서 벗어나게 될 가능성에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 법의 혜택을 받게 될 호스피스-완화의료대상 환자의 이익이 더 선명해진다면, 이 법이 충분히 다루지 못하는 – 제가 판단하기엔 전체 환자 중 상당수의 환자들- 이들은 더 큰 어려움을 경험할 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능한 혜택이 많은 이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려면 법과 현실 사이에 조율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저는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결정의 관계, 여기서 파생되는 죽음의 준비 필요성 그리고 시행과정에서 문제가 되는 병원윤리위원회의 문제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입법 과정에서 발견한 우리 사회의 모순을 짧게 언급하려 합니다. 이것들을 관련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삶과 죽음이 사실은 연속선 상의 한 순간을 의미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호스피스는 연명의료결정의 대안이 아니다

이 법은 완화의료와 연명의료결정을 동시에 다룬 법입니다[1]. 이 둘을 하나로 묶는 것은 임종을 앞둔 동료 시민을 돌보는 사회의 태도라는 사실입니다. 예컨대 이 법은 보건의료서비스가 돌봄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인식의 발로일 수 있고, 죽음의 시기와 인격의 존중방안을 둘러싼 논쟁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법이 문제 해결을 위한 최종적인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이 법의 입법과정을 지켜보면서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 안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 보다 입법 과정에서 확인한 우리 사회의 지향점을 담은 제도를 운영할 방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느 입장에서든 최대한 받아들일 만할 것은 완화의료가 임종 환자 돌봄의 합리화에 있어 선결조건이라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가 임종환자 돌봄의 모든 해결책이 아닙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연명의료결정이라는 측면에서는 한 사람이 살고, (병들고,) 죽는 과정을 모두 포괄하는 어떤 이해가 필요합니다. 예컨대 우리는 건강을 유지하다 한 순간에 꺼지는 것을 이상적인 죽음으로 여기고, 그렇게 죽음을 최대한 뒤로 미루었다가 조금만 경험하기를 바라지만, 이런 우리의 바램은 역설적으로 죽음을 떨쳐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증명할 뿐입니다. 실제로 죽음의 과정[2] 은 더욱 길어지고 있을 뿐입니다[3].
예,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호스피스-완화의료가 약속되었습니다. 이 사실은 흥미로운 역설을 낳습니다. ’건강한’ 노후의 경우, 이 건강한 노인은 병마에 고통을 받지 않는 한 죽음의 과정에 적극적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노령으로 인한 죽음의 순간에는 결정이 불필요할까요? 이법이 목표의 하나인, 중요한 성취라고 할 완화의료에서조차, 생각해 보면, 이 문제가 여전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호스피스 케어를 받는 이들은 죽음의 결정에서 면제됩니까? 우리는 호스피스라는 겉보기에 윤리적인 진료조차 윤리적 숙고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4].

죽음의 준비는 일찍 시작된다.

죽음을 준비하도록 돕는다는 차원에서 이 법을 포함해서 제도가 할 일은 건강한 노인을 포함하여 모든 시민이 삶의 어느 시점에서 죽음을 인식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삶에 대한 주체적인 태도가 자연스럽게 죽음에 관한 결정으로 연장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인간관계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너무 큰 문제와 연결됩니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묘수를 생각하기는 어렵겠지만, 노인의 복지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지 않고 의학적 처치, 의료서비스의 관점에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관점의 한계는 분명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의료기관 밖에서 시민들을 도울 방법으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중요성을 재고해야 할 것입니다. 입법과정에서 지속적으로 제시된 관점에 대해 저는 의심을 갖습니다. 얼마만큼 확실하면 믿을만한 것인지,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면 결국 이 법은 아무런 변화도 가져오지 못합니다[5]. Ron Berghmans는 임파선암을 치료받는 동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경험을 이렇게 기술합니다.

병이 진행될 수도 있고, 치료의 종결이 내 죽음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 진 후, 내가 의식을 잃거나 의사결정능력을 잃게 되었을 때를 대비해서 내 의학적 바램을 진술한 사전의료지시서의 초안을 잡는 것이 도움이 되겠다고 결정했다. 사전의료지시서를 아내와 함께 써내려가면서 우리는 생의 말기 치료와 의료에 관련해서 내 바램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기술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특히 수용할 수 있는 의료와 받아들일 수 없는 의료를 서술하기가 특히 어려웠다. 사전지시서를 작성하는 동안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생의 말기 의료에 관한 생각의 바탕이 되는 내 자신의 가치관을 인식하는 일이었다. 이 가치관을 인식하고 나니 의료인과 친지들에게 실질적인 지침을 주는 것이 가능해졌다. 나는 아내와 내 가치관에 관련되었던 모든 논쟁을 통해, 내가 의사결정을 내릴 수 없게 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아내가 내 가치관과 바램을 바탕으로 하는 대리인이 되기 좋은 위치에 있을 것임을 알게 되었다. 환자에게 가까운 사람이 관여하는 것이 생의 말기 의학적 (그리고 윤리적) 의사결정에 더 낫고 가치있는 정보를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환자의 염려와 바램을 아는 사람과 함께 공식적 사전지시서를 작성하는 이상적인 경우라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다.

Ron Berghmans. Illness, pain, suffering and the value of life. in Dickenson, D., Huxtable, R., & Parker, M. (2010). The Cambridge Medical Ethics Workbook. Cambridge University Press.

죽음에 대한 사회의 대응은, 병이 생기는 시점보다 일찍 시작해야하고, 시민들이 더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삶의 다른 영역과 관련되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가치를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서는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동기를 부여할 뿐 아니라 숙고의 과정을 이끄는 지침의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종이 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동료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사람이 함께 대화하며 길을 열어가는 것이겠습니다.

병원윤리위원회

이 법에서 제시한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호스피스-연명의료의 제도화, 연명의료결정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입니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일부에서는 불신의 태도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연명의료결정이 제도화되면서 이를 지원할 조직이 필요하며, 교육-상담-조정-행정 업무를 포괄하는 기관이 의료기관 내에서 활발하게 기능해야 합니다.
윤리위원회의 발전에 있어서 고려할 것은 법이 지정하는 기능을 넘어서 기관 내에 설치된 서비스의 일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대부분 expert-advice, case-response 형태의로 임상윤리서비스를 이해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이 법이 제시하는 보고 등의 과제조차 처리하기 어렵습니다. clinical ethics consultation service라는 포괄적인 서비스 개념을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아마 법률이 이 서비스 개발의 추진력이 될 것이라고 파악합니다. 법의 규정과는 별개로 임상윤리는 임상의료 서비스의 일부로 제공될 수 있고, 제공되어야 합니다. 의료기관에 따라 환자와 환자 보호자 지원으로 제공될 수 있고, 의료인의 윤리적 고뇌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로 운영될 수도 있습니다. 결국 이 모든 활동을 포괄한 서비스가 개발되어야 할 것입니다.

부권주의에 대한 의문

마지막으로 저는 소위 담론을 이끌어가는 이들이 지속적으로 표했던, 시민들에 관해 갖고 있는 이해할 수 없는 부권주의에 의문을 던집니다. duty to care(의료의 의무)나 생명의 보호 같은 캐치프레이즈로 이 법이 가진 부권주의를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이것은 우리 생명윤리학계의 담론구조와 무관하지 않고 학계의 안이함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시민들이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정보를 추구하고 자신의 뜻을 실현하려 애쓰는 노력은, 부권주의적 관점에서, 무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결정권은 성인(聖人)만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결정권은 우리가 추구할 도덕적 이상지만, 동료 시민을 보호하기 위한 절차입니다. 나 자신을 포함한 동료 시민 중 자기결정권의 이상을 달성한 사람은 별로 많지 않습니다. 시민으로서 자기결정권의 행사 조건은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고, 필요한만큼 결정할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 외국 판례의 일관된 이해입니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변화해야 할 부분도 있겠습니다만 이 법의 시행과정에서 아마 우리 사회가 깨져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1] 현장에서는 명칭에 대한 문의가 들어옵니다. 웰다잉법, 존엄사법,… 대체 무엇이 법을 잘 반영한 것이냐는 질문이겠습니다. 호스피스법도, 연명의료결정법도 아닌 제3의 명칭을 선호하는 것 같습니다.
[2] 최근 구한 일본의 책자는 그 제목이 “죽음의 과정을 살다: 말기 암환자의 경험의 사회학”이라고 하여 건강한 시기 뿐 아니라 질병에 걸려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는 삶의 어떤 시기를 상정하고 있습니다.
[3] 건강하지만 죽음이나 중병의 공포를 떨쳐내지 못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Arthur Frank는 관해사회(remission society)라는 표현에 담아냅니다. 완치가 아니라 질병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이것은 암성질환에 국한되지 않을 것입니다. 참고. 아서프랭크. (2013). 몸의 증언. 갈무리.
[4]Dickenson, D., Parker, M. (2001). The Cambridge Medical Ethics Workbook. Cambridge University Press.에는 수술적 치료와 보존적 치료 사이를 오가며 치료를 결정해야 하는 환자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최근 토론자가 경험한 병원의 사례 역시 호스피스 치료가 윤리적 고뇌에서 해방되지 않음을 보여준다.
[5] 아마, 호스피스는 도입되겠지요

연명의료결정법의 주요 내용

2018년 법 시행을 앞두고 썼던 소개글. 좀 더 큰 맥락에서 제도를 소개하는 연속적인 글을 써 보려다 실패.

연명의료결정법의 윤리적 측면

들어가는 말

연명의료결정법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 이 법은 “환자의 최선의 이익” 보호와 “자기결정” 존중을 통해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보호하는 것을 목적으로 (제1조) 한다. 이 법이 생각하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는 일차적으로 무의미한 의료행위로 신체 침해를 받지 않을 권리이고, 이 소극적 권리를 바탕으로 자신의 뜻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1]. 이런 이해를 기반으로 법은 환자가 임종단계에 진입했음을 전제로(제16조) 환자의 뜻을 확인하고(제17조) 이를 이행하도록 (제19조) 의료인에게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 의무를 실천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은 환자의 뜻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비록 이 법이 환자의 뜻을 알 수 없는 경우를 상정하고 있긴 하지만(제18조) 미성년자와 가족의 전원합의 등을 조건으로 하는 등 범위가 처음 의도했던 경우보다 좁아졌기 때문에, 법의 시행 이후 의료인은 환자의 선호를 확인하고 이를 바탕으로 치료를 제공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관행보다 환자의 참여가 훨씬 중요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 고는 이 법의 시행을 앞두고 우리가 환자의 참여를 어떻게 이해하고, 지지할 수 있을지 고려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환자와 환자 가족, 그리고 의료진이 함께 삶의 연장으로서 죽어가는 과정에서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 해 낼 수 있게 될 것이라 기대한다. 한편 이 고찰과정을 통해 이 법이 가지고 있는 또다른, 그리고 심각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환자의 결정보호

법에서 연명의료계획서(앞으로는 계획서로 약칭)는 “말기환자등의 의사에 따라 담당의사가 환자에 대한 연명의료중단등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사항을 계획하여 문서로 작성한 것”으로, 그리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사전의료의향서, 앞으로는 의향서로 약칭)는 우리 법에서는 “19세 이상인 사람이 자신의 연명의료중단등결정 및 호스피스에 관한 의사를 직접 문서로 작성한 것(법 제2조)”으로 정의된다. 정의만을 놓고 볼 때 이 두 문서의 위상에 관한 궁금증이 생기게 된다. 이 둘은 사실상 ’담당의사’라는 단어로만 구분할 수 있다.
이것과 더불어 환자의 결정권과 같은 표현을 찾기 어렵다는 점은 우리가 처한 상황을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입법자는 아마도 환자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이미지를 상상하기 어려웠거나, 우리 사회에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갈등을 직면할 수 없었을 것 같다. 환자는, 이 법에서는, 자신의 뜻을 밝히고, 의료인이 존중해 줄 것을 기대하는 정도의 기회만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법 제17조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만 직접 적용할 수 있는 환자의 뜻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1. 의료기관에서 작성된 연명의료계획서가 있는 경우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2. 담당의사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내용을 환자에게 확인하는 경우 이를 환자의 의사로 본다.

언론 등에 그려지는 계획서와 의향서의 역할 설명에서 오해를 발견하게 된다 (신문보고 등을 보완). 이 흔한 오해에 따르면 계획서는 의사가 작성하는 것이고 환자가 작성과정에 참여할 뿐이다. 이 참여를 어떻게 의미있게 만들 것인지가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 강조되지 않는다면 환자는 주도적일 수 없다. 환자의 주도성을 보장하기 위한 절차 이해는 배제된 채, 의사의 작성과 임상 결정에 즉각 적용된다는 측면만 강조된다. 그렇다면 환자의 주도권을 강조하는 의향서는 어떠한가? 법은 복잡한 안전장치와 확인을 조건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엄격한 보호조치는 환자의 뜻은, 지식도 불완전하고 희망과 오해로 혼란스러워지며, 경제적 고려가 항상 개입하기 있기에 의사의 엄격하고 성실한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이는 계획서에 대한 기대 때문일 수 있다. 계획서는 미국에서 도입 중인 의사에 의한 연명의료명령(Physician Order for Life-Sustaining Treatment, POLST)과 동일시되는 것 같다. (보완 필요) 미국에서도 POLST는 사전의료의향서의 낮은 작성률과 활용성의 보완 수단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실패 사유는 우리와 다르다. 가정호스피스와 응급의료서비스의 연계, 의료전달체계의 복잡성 등이 POLST 도입의 동기였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보완 필요). 우리나라에서 언급되는 의향서의 불완전성이 사유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POLST는 의향서에 밝힌 환자의 의사를 구체화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제한된다. POSLT가 의료인의 서명이 포함된 의학적 지시의 형태를 띠는 것은 의향서를 우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의료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내용을 – 환자가 그 내용을 확인해 줄 수 있다면 작성의 의미가 없어질 것이기 때문에- 의료진이 해석하는 책임을 인식한 결과인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기능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서식의 내용을 충실하게 제시하고- 이미 다양한 연구가 진행된 바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작성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 -이 법의 시행과정에서 기대하고 있다- 우선 되는 접근이었다. 이 시점에서 의향서와 계획서의 목표로 하는 기능을 검토할 필요가 있겠다.

의향서와 계획서의 역할

외국의 경우도 생의 마지막 시기에는 계획서에 (분명히) 기록된 심폐소생술, 연명의료 등에 관한 환자의 선호가 의향서에 (흐릿하게) 반영된 선호에 우선한다. 그러나 이 두 서식의 관계에 대한 이해는 이런 적용과정의 우선순위와 다르다. 계획서는 의향서를 보완하는 문서로 원칙적으로는 의향서의 내용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오해는 어디서 비롯된 것인가? 의향서를 의사결정과정에 직접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관련있을 것이고, 이와 관련하여 환자들이 질병에 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경험과도 닿아 있다. 그런데, 환자가 질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심각한) 결함의 책임은 누구에게 있고,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질병 이해가 없다는 것은 의료진에게 설명을 들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진료 관행의 문제다. 환자들이 비상식적인 기대, 또는 너무 쉬운 포기와 같은 행태를 보이는 것을 바로잡을 책임은 의향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의사와 의사의 설명에 있는 것이다. 또한 계획서는 의향서를 바탕으로 작성하는 것이며, 환자가 의향서에 기록한 선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상담하고 그 내용을 다른 의료진에게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 전통적으로 의사가 환자에게 하는 말을 권고(recommendation)이라고 하고, 다른 의료인에게 하는 말을 명령(order)라고 했던 것을 떠올려 보라. 계획서는, 이 법의 입법과정에서 논의한 것을 바탕으로 본다면, 의향서에 담길 수 있는 내용을 상담하고 그것을 다른 의료인(미국의 경우라면 응급구조사, 한국의 경우라면 당직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에게 전달하는 수단인 것이다. 의향서는 의사의 책임과 책임에 따르는 권한을 무시하겠다는 선언이 아니라 자신의 뜻을 밝혀서 의사와 이야기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에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공동의사결정의 이해

김진경 (2009)은 의료라는 배경에서 공동의사결정을

의학적 결정의 당사자로서 환자와 의사 그리고 관련된 사람들이 문제에 대해 가장 잘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 아래 이들 각각의 의견 수렴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라고 정의한다[2].

김진경 2009

이것은 환자가 의사결정과정에 있어 정당한 참여자임을 인정하고 그 자발적인 결정의 실현을 보장하는데서 멈추지 않는다. 자율성이라는 개념은 환자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문턱인 동시에 추구해야 할 가치이기도 하다[3]. 한편 자율성을 추구해야 할 가치로 인식한다면, 자율성의 존중은 그 실천 과정에서 요구되는 구성요소들을 의료진 등 관련자들의 책임으로 바꾼다.
임종기에 공동의사결정은 환자의 의사결정능력, 치료의 무의미함, 그리고 삶의 질이라는 가치를 보존하기 위한 시도로 이해할 수 있다[4].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이 극도로 제한된 임종기에 환자의 의사를 반영한 문서인 의향서의 중요성은 공동의사결정이라는 패러다임 안에서도 유지된다. 계획서는 아직 환자의 의사결정능력이 의미있게 존재하는 시점에 무의미한 치료행위가 계속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설정하고, 삶의 질을 보장하는 수단인 것이다.
한편 의사소통은 공동의사결정의 수단이다. 대화(conversation)는 연명의료와 관련된 논의에서 중요한 수단으로 제시되곤 하는데(예를 들면 미국 캘리포니아나 뉴욕주의 POLST/MOLST 캠페인 등에서), 환자 편에서 분명한 욕구를 표현하고 가족과 의료진이 이 욕구를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을 연명의료 의사결정이라 이해할 수 있다.

연명의료계획서

연명의료계획서는 어떤 실제적인 의미를 갖는가? 계획서는 공동의사결정에 있어 의료인의 책임을 상징하는 문서다. 계획서는 환자를 면담하고 평가한 후 작성하는 의학적 명령(medical order)가 아니라, 환자가 결정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그 의미를 해석하며, 과정 내내 함께 하는 것을 의미한다.[5] 그러나 이 과정 전반은 법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법 제10조가 요구하는 계획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환자의 질병 상태와 치료방법에 관한 사항
  2. 연명의료의 시행방법 및 연명의료중단등결정에 관한 사항
  3. 호스피스의 선택 및 이용에 관한 사항
  4. 연명의료계획서의 작성ᆞ등록ᆞ보관 및 통보에 관한 사항
  5. 연명의료계획서의 변경ᆞ철회 및 그에 따른 조치에 관한 사항

법조문에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치료적 접근이 담길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현재 의학적 관행에서 환자를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방안이 언급되지 않았다. 계획서는 단계적으로 작성되어야 한다. 여기에는 의학적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 제공받은 진단과 예후 등의 실질적 의미를 이해하고 선택하는 단계, 선택을 인정하고 서명하는 단계 그리고 이 선택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단계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여기에 전제되는 것이 환자의 분명한 가치관이다.
일부에서는 치료과정에서 환자의 가치관은 이전과 같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보통) 사람은 건강과 생명을 원하지 죽음을 원하지 않는다는 상식을 반복하는 것 같다. 모든 사람이 그렇다. 그런데 이 법이 고려하고 있는 “임종기” 환자도 그런가? 그래야 하는가? 의료진은 환자가 일관된 가치관을 지키도록 지지하는 책임을 질뿐, 가치관을 바꾸도록 유도하거나 하는 권한 같은 것은 없다. 그리고 변화하는 것은 질병에 관한 이해이며, 설명의 문제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6].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한 법의 태도는 조심스럽다. 해석상의 우선순위 문제 뿐 아니라 시민들의 가치관 표현이라고 할 수 있는 의향서를 등록하도록, 그리고 그것도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기관(법 제11조)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법은 보건소, 의료기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전문단체 등을 등록기관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국가가 지정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의 감독을 받는다. 등록기관을 통한 상담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경험하는 의향서 작성과정의 어려움[7]을 해결하는 수단일 수 있으며, 제도를 통해 의향서의 구속력을 보장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한편에서는 그 작성과정에 제약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의향서의 문서로서의 효력에 집착한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고, 이렇게 효력에 집착하게 되면 계획서와 충돌하는 논리적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
죽음에 대한 사회의 대응은, 병이 생기는 시점보다 일찍 시작해야하고, 시민들이 더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하고, 삶의 다른 영역과 관련되어야 한다. 의향서의 가치는 이 차원에 있다. 문서는 죽음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할 동기를 부여할 뿐 아니라 숙고의 과정을 이끄는 지침의 역할도 할 수 있다.동료인간에게 관심을 갖고 돌보는 사람이 함께 대화하며 길을 열어가는 것이다.[8]

의향서-계획서의 연속성

이렇게 연명의료에 관한 결정을 이해하게 되면, 의향서를 통한 환자역량 강화와 계획서를 통한 임상 적용이라는 역할 구분이 가능해진다. 환자는 자신의 가치관을 인식하고 표현하며, 의학적 상황을 이해하여 이를 치료 과정에 반영할 권리를 갖는다. 의료는 환자를 존중하여야 할 것이다. 의향서는 가치관의 차원에서, 계획서는 임상적인 차원에서 구체적인 적용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연명의료라는 큰 그림 안에서 의향서와 계획서는 보완 수단으로 공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정책적 지원이 필요한가? 이 법이 제시하는 대책은, 아직 원론적인 차원이기 때문에 평가가 어렵다. 다만 다음의 요소를 확보하여 의향서-계획서의 연속성을 보장해야 할 것이다. 즉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죽음 교육이다. 시민 교육은, 결국 의향서 작성이 최종 성과가 되겠지만, 죽음에 관한 대화를 이끌어내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우리 문화가 죽음에 대한 논의를 터부시 하지 않도록 하는 과정, 삶과 죽음에 관한 가치관의 확인 등이 시민교육에 포함될 것이다. 두번째는 전문가를 대상으로하는 연명의료계획 교육이다. 의료인도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죽음을 이야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 환자들과 환자 가족을 돕는 역할을 맡게 된다는 점에서 의료인의 전문성 확보를 위한 교육과정이 시급하다[9].

병원윤리위원회

의료기관윤리위원회(법 제14조)는 호스피스-연명의료의 제도화, 연명의료결정만큼이나 중요한 사안이다. 의료기관윤리위원회는 그 중요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의 관심에서 벗어나 있고, 일부에서는 불신의 태도를 보이지만 연명의료결정이 제도화되면 윤리위원회는 이를 지원할 조직으로서, 의료기관 내에서 교육-상담-조정-행정 업무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윤리위원회의 발전에 있어서 고려할 것은 법이 지정하는 기능을 넘어서 기관 내에 설치된 서비스의 일부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대부분 expert-advice, case-response 형태의로 임상윤리서비스를 이해하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이 법이 제시하는 보고 등의 과제 등 기본 서비스를 담당할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clinical ethics consultation service라는 포괄적인 서비스 개념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데(예를 들면 상담-교육-문제해결을 포괄하는 서비스의 제안이 존재한다. 참고 Weidema, F. C. (2014). Dialogue at Work). 법과는 별개로 임상윤리는 임상의료 서비스의 일부로 제공될 수 있고, 제공되어야 한다.

나가면서

이 글에서는 연명의료계획과 사전연명의료계획서 작성의 과정이 상충하는 개념이 아니라 보완하고 연계되는 것임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각 기관의 차원에서 제공할 수 있는 임상윤리서비스를 살펴보았다. 이 법이 우리에게 준 가장 중요한 교훈은 죽음의 결정은 우리가 회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사실이다. 이 법은 우리 사회의 공동의 노력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앞으로 죽음에 관한 논의를, 사회적으로, 시작할 기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 법의 통과 후 시민들의 반응을 보면서 발견하게 된 것인데, 연명의료결정법10이 죽음의 문제를 직면하도록 우리를 이끌었다는 것, 최소한 동기를 부여하거나 그런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1]: 대법원, 2009년5월21일판결 2009다17417

[2]: 김진경 (2009). 의학적 의사결정 모델로써 공동의사결정의 이해. 한국의료윤리학회지, 11(2), 105–118.

[3]: 최경석 (2011). 생명의료윤리에서의“자율성”에 대한 비판적 고찰.한국의료윤리학회지, 14(1), 13–27.

[4]: 이은영 (2012). 삶의 마감 시기 의사결정의 윤리적 이슈 – 의사결정 모델 제안을 중심으로. 한국의료윤리학회지, 15(2), 160–183.

[5]: Bomba, P. A., & Orem, K. (2014). Lessons learned from New York’s community approach to advance care planning and MOLAT. Ann Palliat Med 2015;4(1):10-21. http://doi.org/10.3978/j.issn.2224-5820.2015.01.05

[6]: Epstein, A. S., Prigerson, H. G., OReilly, E. M., & Maciejewski, P. K. (2016). Discussions of Life Expectancy and Changes in Illness Understanding in Patients With Advanced Cancer. Journal of Clinical Oncology, 1–8. http://doi.org/10.1200/JCO.2015.63.6696

[7]: Ron Berghmans. Illness, pain, suffering and the value of life. in Dickenson, D., Huxtable, R., & Parker, M. (2010). The Cambridge Medical Ethics Workbook. Cambridge University Press.

[8]: Bomba, P. A., & Orem, K. (2014). Lessons learned from New York’s community approach to advance care planning and MOLAT. Annals of Palliative Medicine, 4(1), 10–21. http://doi.org/10.3978/j.issn.2224-5820.2015.01.05

[9]: 미국 일부 주에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의 경우 2일 코스의 교육과정이 10여년 간 제공되어 왔다.
http://coalitionccc.org/training-events/polst-education/ (http://coalitionccc.org/training-events/polst-educa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