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논의는 다음과 같다.
– 프라이버시 중심의 접근은 연대의식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모델인가? 개인의 자유와 결정권을 강조하는 것과 공동의 협력 사이에 갈등은 없는가?
– 프라이버시와 정보 주권을 강조할 때 따르는 문제, 즉 시민 개인의 정보문해 문제(information *il-*literacy)는 어떻게 해소할 수 있는가? 혹시 제안이 있을까?
– 개인의 정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기술의 발전으로 빅브러더 탄생의 가능성을 도리어 높이고 있다. 이 아이러니에 관한 발제자의 견해는?
하지만 개인의 경험에서 이 문제는 다르게 읽힐지도 모른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위는 흔적을 남긴다. 건강상태는 일반적으로 말해 우리의 행위가 내 몸에 미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의식적으로는 기억하지 못하는 행위들이, 혹은 의식이 묻어버리거나 무시하는 행위들을 몸은 차근차근 받아서 기억한다. 아픈 몸이란 몸의 기억을 재현하는 것인가?
이 병을 안은 개인이 의료를 찾을 때, 그의 몸의 기억은 의사에게 재현되고 ‘정보’화 된다. 정보화란 몸과 몸이 기억하는 개인의 행위가 처리가능하고 의미있게 해석할 수 있도록 체계화 되는 과정이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 의료가 그의 건강을 정보화하는 것은 그의 삶을 자르고 처리하고 다시 붙여 새로운 무엇인가를 만든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 새로운 무엇이란 아픈 사람 자신일 수도 있고, 비슷한 아픔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한 사회 구성원 전체의 모습일 수도 있다.
새로운 정보가 된 아픈 사람의 삶이 정보를 활용해서 다시 구성될 수 있을까? 모든 정보는 한 사람의 단면들을 모은 것이고, 의료가 만든 정보란 합쳐봐야 다시 정보의 원래 출처로 돌아갈 수 없다. 정보화는 그의 삶을 불완전하게 반영할 따름이다. 결국 정보화를 통해 얻어진 지식이란 그 지식을 만들려는 사람의 의도에 따라가게 마련일뿐이다. 비관적인 전망이지만.
건강정보가 포괄적으로 발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삶이 더 잘 담기는 것을 의미하나? 정보로 환원되지 않는 그의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 또는 정보가 되어 파괴되는 의미는 없을까?
오늘날 정보란 공유와 처리를 통해 의미있는 지식이 되고 확산되기를 기다리는 자원이다. 행위와 행위가 만들어낸 의미가 자원이 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흔히 이야기하는 정보 주권이란 자원이 된 정보에도 유효한가?
지우고 싶은 행위들 – 아주 사소한 것들, 예를 들어 과식, 과로, 잘못된 성생활, 또는 여행 같은-이 때론 몸에 생생한 자국을 남긴다. 어느날 벼락같이 떨어진 성인병 진단이나, 어떤 종류의 감염병들은 내 몸에 남은 행위의 흔적이다. 이미 나의 행위는 내 의식의 통제를 벗어나 육체에 남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흔적을 통제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진다. 나는 선택적으로 기억하고, 선택적으로 공유하고, 선택적으로 분석되기 원한다. 내 몸은 아프지만 해결의 댓가로 이 기억의 주권을 포기할 의사가 없다. 내 몸의 기억도 그렇게 남들에게 남기를 바란다. 이것은 비합리적 사고, (또다시) 무책임한 헹동에 불과하다. 그러나 나는 다시 자유를 생각한다. 내가 왜 아픈지를 아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되지만, 그것이 내 행동의 자유를 억압할 때, 기꺼이 거부하고 저항할 권리가 있기를 바란다. 나의 자유는 나의 건강보다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이 긴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해결책을 찾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일 수 있다. 이 갈등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인간에겐 자유를 향한 열망이 존재한다. 자유와 맞바꿀만한 가치가 있을까? 언제부터 건강이 인간에게 지고(至高)의 가치가 되어 버렸는가?
오늘날의 건강정보는 질병 정보를 넘어 그의 삶의 정보로 발전하고 있다. 유전정보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ubiquitous 정보시스템은 사실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그리고 그의 신체가 그의 정신에 반응한 기록을 남긴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우리의 의도를 제외한 모든 것이 기록되는, 삶의 기록이 남는 것이다. 공리주의자 신처럼, 의사는 그의 모든 행위의 건강 상의 가치를 저울위에 올려 평가하게 될 것이다. 내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정보화는 되려 차꼬가 되어 나를 따라 다닌다. 정보를 보면 나를 알 수 있기에 정보에 남을 나의 행동은, 아무도 감시하지 않으나, 감시당하게 된다. 악용의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흔한 반대 이야기가 아니다. 의사들의 도덕성과 시스템을 형성하는 이들의 선의가 악용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의 자유가 기록에 남는다는 것은 불편하기만하다. 나는 기록되지 않는 자로, 나의 사후에 나의 흔적도 나와 함께 사라지기 바랄뿐이다.
사실 우리의 모든 정보는 어딘가에 축적되어 연결과 분석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정보가 어디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알 수도 없고 알고 있는 분야에서도 통제할 수단이 없는 이 상황에서 우리는 정보화를 얼마나 더 추진할 수 있을 것인가? 정보화 시대는 결국 우리에게 또다른 도덕감을 요청하고 있다. 나의 삶을 타인을 위해 활용할 수 있게 해달라. 나의 삶의 기록이 타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역시 나처럼 자신의 삶을 드러낸 다른 이의 건강을 회복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로, 우리는 의료정보를 타인에게 제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도 다른 사람이 내어준 정보의 혜택임을 안다면, 그리고 협력의 결과는 개인을 능가한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정보화의 협력에 참여해야 한다. 정보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우린느 사회적 협력과 정의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다.
좋은 정보 처리는?
인간은 집합적으로 존재함으로써 환경보다 우위에 선다. 혼자서 맹수와 싸울 수 없지만 열명, 혹은 수십명이라면 맹수를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 협력을 위해서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혈연(시간)과 지연(공간)을 넘어선 협력적 관계를 생각해야 하는 현대 사회에서 신뢰는 같은 이해(理解)의 바탕을 필요로 한다. 의료정보 빅데이터에서 공유해야 할 이해는 무엇인가? (1)의미있는 지식을 만들려는 것이다, (2)만들어진 지식과 이익은 독점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3)지식이 사람을 차별하는데 사용되지 않는다, (4)정보를 다루는 사람은 청지기의 책임의식을 갖는다, 그리고 (5)정보가 지식을 만드는데 필수 자원이다. 과연 우리는 이 공통의 이해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