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광수. 생명의료 영역에서의 넛지 전략과 관계적 자율성: 환자와 의사 관계를 중심으로. 생명윤리. 2022(12); 23(2): 1-16. 에 대한 몇 가지 생각
생명윤리는 선택과 자유에 관련된 문제다. “더 나은(즉 합리적인) 선택을 자유롭게(즉 자율적으로) 내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고심하는 것이 특히 생명윤리의 실천에서 중요한 문제가 된다. 넛지는 더 나은 선택을 유도하는 전략이라는 점에서 유용한 도구처럼 보일 수도 있고, 위험한 접근법으로 배척될 수도 있다. 저자는 넛지가 유용하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심각하지 않은 결정에 관련 된 것, p.9) 그것이 받아들여질만한 전략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p.13). 저자의 논변은 이렇다. 1)넛지의 정의와 그 사용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 2)보건의료영역에서 해당 조건의 의미, (드러나지 않았지만) 3)넛지가 적용될 수 있는 환자-의사관계의 분류, 그리고 4)각 분류별 넛지 사용의 정당화 가능성 분석.
읽으면서 잘 이해되지 않았던 것은 환자-의사 관계를 구두동의가 전제되는 관계와 서면동의가 전제되는 관계로, 그리고 그 구분의 근가로 치료의 심각성(p.8)을 들었던 점이다. 또 하나를 들자면 넛지는 선택을 배제하는 전략이라는 설명이다. 하나씩 생각해 보자.
- 의학적 결정은 그 결과의 심각성으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심각성이 자발적 동의를 통한 정당화에만 연결되지 않는다. 심각성은 치료의 결과에 대한 판단(즉 삶의 질 평가)에 더 직접 연결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치료의 효과가 크지만 위험성도 적지 않은 (광범위한 외과적 시술이나 항암제 치료 같은) 시술에 대해서는 자발적 동의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그러나 저자의 글을 읽다 보면 자발적 동의가 전부인 것 처럼 읽힌다.
- 넛지는 정말 선택을 배제하는가? 의료라는 전문적인 영역에서 선택을 제시하는 것은 ‘자율적’ 결정에 이르는 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자가 “관계적 자율성”이라는 어휘에 담은 의미대로다. 선택지의 제공은 실질적으로 자율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단서를 제공하는 일이다. 따라서 넛지는 배제가 아니라 제공으로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아마 넛지가 조종(manipulation)으로 전락하기는 쉽다. 그러나 그것은 넛지라는 행위 범주가 (모호한 정의에 근거해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니라 환자와 조우하는 의사의 태도에 달려 있는 것이다. 환자가 생각하고, 묻고, 자신의 가치관을 검토하도록 돕고, 그 결정을 존중하겠다는 일반적인 자율성존중은 선택지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선의의 (동어반복) 넛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행위의 동기는 항상 모호하고 틀리기 쉽다는 것이 더 근본적인 문제일 수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