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조력죽음은 생애말기돌봄보다 우선하는 문제가 아니다 

지난 주말 신문사에 기고한 컬럼. 신문에 실린 내용은 더 단정해지고 명료해졌을지 모르지만, 공산품이 된 느낌이다. [시론] 품위있는 죽음, 호스피스 더 늘려야

오랫동안 건강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이 가능해 진 것은 깊이 감사할 일이다. 댓가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 축복된 삶의 마지막에서 기다리는 죽음을 오랫동안 준비해야 하는 숙제가 남아 있다. 죽음은 두렵고 슬프고 어떻게든 피해야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어서 우리 인류는 그나마 죽음을 받아들일만하게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고심해 왔다. 결론은 살아 있는 날을 즐기고 죽음이 다가올 때 담담히 맞이하는 것, 두 발로 서서 제 먹을 것, 가족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고, 그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의학적 돌봄의 가장 중요한 발전 중 하나는 생애말기가 중요한 돌봄의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전과 달리 죽음이 임박하도록 통증과 불편함을 줄이는 의학적 조치들이 고안, 제공될 수 있다. 이것은 통증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시간이 줄어들고 품위있고 존엄하게 죽음을 맞이할 기회가 늘어났다는 말일 것이다. 의학은 이런 방향으로도 발전하고 있고, 사회적인 지지도 이전보다 두터워졌다. 그러나 그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은 여전히 일부에 불과한 현실이다. 

죽음에 이를 때까지 한 사람의 인격으로 존중과 돌봄을 받도록 보장하는 기반이 법과 제도일 것이다. 물론 법과 제도는 돌봄을 누리는 사람, 그리고 그 돌봄을 어려움 속에서 제공하는 사람을 지지하고 돕는 것이지 속박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생애말기에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에게 법과 제도가 보장할 수 있는 지지와 도움이란 무엇인가? 법과 제도는 의학적 돌봄이 제공되는 의료기관과 기관이 따라야 할 절차와 권한을 규정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은 1) 환자가 연명의료에 대해 뜻을 밝힐 수 있는 방법과 절차, 2) 호스피스와 연명의료에 관해 설명을 듣고 결정할 수 있는 권리, 3) 환자의 뜻과 의학적 판단을 종합하여 삶의 마지막 단계에서 치료결정을 내리는 원칙을 제시한다. 무시하면 안될 사실은 이 과정에 인적, 물적 자원이 소요된다는 사실이다. 

이런 법과 제도가 있음에도 아직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개선할 문제가 많다. 말기 환자 중 호스피스 서비스를 받는 비율은 암환자의 경우에도 20% 내외에 불과하다. 시설과 인력이 그나마 갖춰진 상급종합병원에서도 연명의료에 대한 환자의 뜻이 반영된 치료 결정은 이제 50% 내외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죽음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의학적 사실을 이해하고 자신이 바랬던 죽음의 방식을 상상해 내고, 그것을 밝히도록 존중하는 태도록 천천히 격려하는 일은 아직 우리 사회가 배우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당장 해결할 일은 환자가 의학적 설명을 듣고 필요한 돌봄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적절한 돌봄을 위한 기반을 만드는 일이다. 의사조력자살 논의는, 지금 시작할 수 있을 것이나, 생애말기돌봄의 개선이 많이 진전된 후에야 제도화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이 풍성하고 최선일 때, 자신의 삶에 대한 분명한 의식과 태도가 갖춰질 때 변화가 가능할 것이다. 

의사조력죽음의 입법을 서두르자는 이들과 지금은 이르다는 이들 사이에 서로 다른 문제의식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삶의 마무리가 삶의 과정만큼 비참한 현실을 타개하자는 것이다. 낮은 삶의 질이 낮은 죽음의 질로 이어지고 이를 피하기 위해 이른 죽음을 선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의 근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 도착지에 이르는 과정에서 의사조력자살은 먼저 거쳐야 할 단계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80%가 의사조력죽음, 안락사에 우호적이라는 조사결과가 나온다. 우리나라 국민의 아마 90%는 남북통일에 찬성할 것이다. 그러나 남북통일을 단번에 선언하지 않는다. 어떤 논의에 대한 도덕적, 원칙적인 찬성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당장 법으로 구체화되고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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