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학자는 무슨 도움이 되는가?

대학에 소속된 의료윤리학자라서 이런저런 위원회에 참여할 기회가 생긴다. 위원회는 정책을 다룰 때도 있고 해당 기관의 운영을 살펴볼 때도 있고 문제가 제기된 구성원의 행위를 평가하고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다. 윤리학자로 참석한 나는 ‘윤리학’적으로 기여할 것을 기대 받는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런데 나는 어떤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겠는가?

오늘도 그랬다. 심각한 문제가 제기됐고 어떤 형식으로든 결정은 내려야 할 상황이었다. 임상의사는 전문가 단체 지침을 소개하고 법률가는 사안의 (그가 이해한) 법적 맥락을 설명했다. 인권운동가와 저널리스트는 상대적 약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원칙을 주장했다. 위원장은 그간의 사례가 다뤄진 방식과 절차를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사람들 사이에서 윤리학자인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Deans와 Edwards는 위원회 내에서 윤리학자의 전문성을 다룬 에세이를 썼다. 에세이의 내용대로 윤리학자의 역할은 도덕적 판단을 하는 것(도덕적 기준을 제시한다든지)이 아니라 윤리적 숙고의 과정이 엇나가지 않도록 도구적인 기능을 하는 것일지 모르겠다.

오늘도, 그리고 보름 전 다른 위원회에도, 위원회에서 나는 가능한 규범적 평가는 하지 않으려 했다. 사실을 파악하는 일은 임상가가 위원회 판단의 결과를 제시하는 일은 법률가가 하면 되니, 나는 혹시 판단 과정이 어긋나지 않도록 지키는 일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을 아끼는 것은 한편으로 위원회 안에서 가지는 위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잊어서는 안될 것임도 생각하게 된다. 윤리학자가 쓸모 있다는 생각이 들어야 하는데 안전장치로 자기 기능을 제한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

어쨌든 오늘 결정을 생각해 보면, 결정에 이르도록 기여했다는 생각도 들고 한편으론 약자의 주장을 제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윤리학자는, 적어도 위원회에서는, 옹호자 역할을 우선할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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